감자 한 알보다 가벼워진 주권 — 우리는 왜 ‘복녀’가 되었는가

감자 한 알보다 가벼워진 주권 — 우리는 왜 ‘복녀’가 되었는가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왜, ‘복녀’가 되었을까요?

김동인의 단편소설 「감자」에서 복녀는 처음엔 그저 가난한 여자였습니다. 손에 쥔 게 없어 감자 하나를 훔치며,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녀는 생존을 위해 자신을 팔고, 결국 한 남자를 칼로 찌릅니다.
우리는 종종 그녀를 도덕적으로 타락한 인물로 보지만, 그보다 먼저 한 인간이 ‘주체성’을 잃고 무너져가는 비극의 과정을 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것은 과거 복녀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지금 이 시대의 우리도, 어쩌면 또 다른 ‘복녀’가 되어 살아가고 있진 않나요?
소외된 삶, 반복되는 경제 불안, 쪼개지는 신뢰, 외면받는 목소리… 이 모든 고통 속에서 ‘국민’이라는 이름의 우리는 얼마나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누리고 있을까요?


복녀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왜일까요? 그녀는 ‘가난’에 주권을 빼앗긴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묻습니다.
주권이란, 단지 투표를 하는 권리일까요?
아닙니다. 주권은 “내 삶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힘”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주권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단지 문서에 적혀 있다고 해서 지켜지는 것은 아닙니다.
복녀가 감자를 훔칠 수밖에 없던 이유는, 그녀에게 말할 수 있는 힘,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인간다운 삶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주권이 박탈당한 인간은 도덕조차 지킬 수 없는 절벽 끝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봅시다.
우리가 무력할 때, 무관심할 때, 우리의 주권도 복녀의 감자처럼 서서히 빼앗겨 갑니다.
그것이 선거든, 언론이든, 교육이든… 우리가 외면할 때, 그 자리에 누군가는 권력을 쥐고, 누군가는 복녀처럼 짓눌린 채 살아갑니다.


복녀의 타락은 개인의 죄이기도 하지만, 사회의 죄이기도 합니다.
주권이 없는 국민은, 감자를 훔치듯 권리를 구걸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주권을 가진 국민은,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손에 쥔 사람입니다.

그러니 이제 묻겠습니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요?
복녀처럼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당당히 고개를 들고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국민이 될 것인가?

민주주의는 누군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할 ‘마음의 태도’이며, ‘책임 있는 행동’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바로,
**“나는 주권자다”**라는 자각에서 비롯됩니다.


💬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마음속에서,
작은 감자 하나보다 더 소중한 당신의 권리와 삶의 가치가
조용히 뿜어져 나오기를 바랍니다.

복녀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왜일까요? 그녀는 ‘가난’에 주권을 빼앗긴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감자를 훔치고, 몸을 팔고, 결국 타락해갔던 과정은, 단지 생존의 문제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세상의 질서 바깥으로 밀려난 채,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전혀 없었던 인간이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정치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헌법상 주권자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정말로 “직접” 당신의 대표를 선택하고 있다고 느끼십니까?

오늘날 국회의원은 대부분 정당이 공천한 후보자 중에서만 선택할 수 있는 구조 안에 놓여 있습니다.
국민이 직접 후보를 고르고, 토론하고, 정책을 따져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누군가의 손에 의해 ‘미리 정해진’ 명단 중에서 고르도록 강요당하는 간접민주주의의 현실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복녀가 삶의 주도권을 잃은 채 ‘살기 위해’ 감자를 훔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우리도 이미 정해진 구조 안에서 ‘그나마 나은 사람’을 고르는 수동적인 선택을 반복하게 만드는 현실입니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이 구조를 ‘신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국민은 국회를 믿습니다. 정당을 믿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주권이 서서히 침해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감지하지 못하게 됩니다.
주권은 총칼이 아닌, 바로 이런 무관심과 착각 속에서 조용히 무너지는 것입니다.


복녀의 타락은 한 여인의 몰락이 아니라, 삶의 선택권을 빼앗긴 인간의 슬픈 초상입니다.
우리 역시 두 정당이 공천한 후보만을 고르는 구조 속에서,
“선택하는 국민”이 아니라 “정해진 대로 따라가는 국민”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정치는 ‘감자’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굶주리지 않도록 스스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니 다시 묻겠습니다.
우리는 진정한 주권자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공천받은 몇 사람 중 하나를 고르는 수준의 ‘절반짜리 선택권’에 안주하며,
조용히 무너지고 있는 민주주의를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진정한 민주주의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는 주권자다’라는 자각을 가질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그 자각이 모일 때, 우리는 더 이상 복녀처럼 소외된 존재가 아닌,
삶을 주도하는 인간으로, 역사의 주인공으로 설 수 있습니다.

공직자 선거법 에서 공천제는 헌법에서의 직접선거를 위배한   위헌이 될것입니다

우리의 기초단체장,국회의원은 공천없이 직접선거로 해야합니다

정당이 추천하지 않는다면 좀더 국민을 위한 정치인이 선출될것입니다

#나는주권자다
#민주주의는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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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공천제개혁
#간접선거의진실
#주권은선물아니다
#국민이정치를바꾼다
#민주주의의착시
#참여없는선택은허상이다
#감자에서배우는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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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권력의무기
#정치적무감각을깨우자
#선거는끝이아니다
#국회를감시하라
#의심은민주의첫걸음
#삶의선택권을지켜라
#주권의무게를느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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